헤르만 헤세의 '즐거운 정원'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사람들은 한 뙈기의 땅을 자신의 생각과 의지대로 바꾸어 놓는다.
여름을 기대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과일과 색과 향기를 창조해 낼 수도 있다.
정원을 꾸미며 느끼는 창조의 기쁨과 창조자로서의 우월감이 바로 그것이다.
작은 꽃밭, 몇 평 안 되는 헐벗은 땅을 갖가지 색채의 물결이 넘쳐나는 천국의 작은 정원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도시적 환경에 익숙한 현대인은 자연과 동 떨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으면서 인공적으로 조성된 도시적 환경을 천연적 자연환경이 잘 보전되어 있는 곳보다 훨씬 더 안락하고 편안하다고 느끼고 있다.
하지만 과연 꼭 그렇기만 한 것일까?
도시에서만 나고 자란 사람은 자연환경이 잘 보존된 시골에서는 외롭고 불편해서 도저히 살아갈 수 없을 것 같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생활편의와 관련된 부분일 뿐, 사람은 여전히 본능적으로 자연과 완전히 동 떨어져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다.
물론 생업에 바쁜 현대인들이 모두 자연친화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 억지로 도시를 떠나 살고자 할 필요도 없고, 또 현실적으로 그럴 수도 없다.
반드시 천연의 자연환경 속에 묻혀 살아갈 수만은 없는 것이 현대인들의 현실이다.
그래서 바로 이러한 측면에서 정원이 지니는 의미는 각별하다.
서두에서 언급한 헤르만 헤세의 '즐거운 정원'에서의 독백처럼 거창하지 않아도 그저 작고 인위적인 공간이라 하더라도 녹색의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바로 도시 속 자연이며, 자연에 대한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작지만 소중한 힐링의 공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원은 인공적으로 자연적인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녹색 공간이다.
정원에는 조성하는 사람의 의지와 계획이 담겨 있다.
이러한 공간을 개인이 아닌 지역이나 단체가 많은 사람들을 위해 조경계획을 바탕으로 조성해 놓으면 공공정원, 즉 공원이 된다.
작은 마당 한 평 없는 공공주택 아파트에 주거하는 대부분의 현대인들이 정원을 조성할 수는 없지만, 발코니와 거실에 화분을 배치하여 가꾸면서 얼마든지 1평, 혹은 그 이상의 실내정원을 조성할 수도 있다.
실내정원의 녹색식물이 주는 건강·정서상의 유익은 생각 이상으로 크다.
아파트 단지 내의 조경은 바로 친환경적인 '단지 내 공원화'란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최근에는 건물마다 옥상정원을 조성하여 자연친화적인 녹색 힐링공간을 조성하는 곳도 증가하고 있는데 이는 도시의 열섬현상을 완화하는 친환경적 공원의 기능을 하기도 한다.
(조경은 보다 넓고 계획적인 의미이다)
개인적인 정원을 꾸미고 가꾼다는 것은 단지 나무와 화초 몇 그루를 심거나 화분 몇 개를 가져다 놓는 데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내 주변 가까이 자연이 시작되는 공간을 조성하는 것이며, 그 안에서 녹색 생명체 와의 교감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는 힐링의 공간을 소유하는 것이다.
나무·꽃·화초, 그리고 지피식물들까지..
익숙한 주인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무럭무럭 성장한다는 말이 허언은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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