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물고기 중에서 아주 못생긴, 하지만 정말 유익하고 고마운 물고기를 꼽으라면 '미꾸라지'를 빼놓을 수 없다.
한국인에게는 메기 매운탕 못지않은 추어탕이란 좋은 먹거리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 미꾸라지는 우리에게 예전부터 이미 친숙한 물고기이다.
미꾸라지의 특성
미꾸라지의 생김새는 기다란 형태인데 의외로 잉어목에 속하는 물고기이다.
한자어로는 '추어(鰍魚)'라고 표기한다.
벼 수확이 끝나는 가을에 많이 잡히는 물고기여서 '가을 추(秋)' 자가 들어있다.
'미꾸리'라는 방언으로도 불리기도 하는데 미꾸리는 미꾸라지와 생김새는 비슷하지만 다른 종의 물고기이다.
- 미꾸리 : 입수염이 미꾸라지보다 짧으며, 옆에서 볼 때 몸통이 둥글다.
- 미꾸라지 : 입수염이 미꾸리보다 길고, 몸통이 납작한 편이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물을 흐린다'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탁한 물에서 잘 산다.
1급수에 사는 종개류와 달리 오히려 진흙뻘, 감탕물을 훨씬 더 좋아한다.
이는 미꾸라지가 오직 아가미 호흡에만 의지하지 않고 일명 '장호흡'이라는 보조 호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용존 산소량이 부족한 곳에서는 수면 위로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산소를 머금고 들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몸통은 점액질로 보호하고 있기 때문에 매우 미끄러워 맨손으로 잡기 어렵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간다', '법꾸라지' 등의 비유어가 많이 있다.
유익한 토종 물고기 미꾸라지
미꾸라지가 인간에게 매우 유익한 물고기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 추어탕은 보양식으로도 여겨질 만큼 훌륭한 먹거리이다.
- 미꾸라지는 모기 유충인 장구벌레의 천적으로 모기 구제에 매우 유익한 생물이다.
- 여러 생물의 먹이가 되는 '베이트 피시'로서 토종 생태계의 밑거름이 되는 개체이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하루 천 마리 이상의 장구벌레를 잡아먹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데다 오염에도 강한 편이어서 실제로 모기 구제를 위해 미꾸라지를 투입한 사례가 많이 있다.
미꾸라지는 메기, 가물치 등의 대형 육식 어종을 비롯해 거북이, 왜가리, 백로, 두루미, 수달 등의 먹잇감이어서 미꾸라지의 감소는 다른 생물군의 감소로 이어질 만큼 생태계 유지 측면에서도 유용한 물고기이다.
다만 국내 토종 미꾸라지 개체수 감소로 인해 많은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서 중국산 미꾸라지가 많이 유입되었다.
따라서 교잡종의 발생 우려 때문에 현재 미꾸라지는 내수면 생태 교란종으로 지정되어 있는 상태여서 호수나 하천에 무단 방류하는 것은 불법이지만 이러한 사실이 일반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아 주의가 필요하다.
특히 불교 행사 중 방생할 때 이런 점을 특히 유의해야 한다.
남원식 추어탕 vs 경기도식 추어탕
어린 시절 시골에서 동네 사람들이 논 보두랑에서 미꾸라지를 잡아 냇가 백사장에서 가마솥으로 얼큰하게 추어탕을 끓여 먹던 기억은 지금도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미꾸라지는 요리하기 전 반드시 소금으로 해감해야 한다)
그런데 나중에 도시에서 옛 추억을 떠올려 다시 추어탕을 접했을 때 어린 시절 먹어봤던 그 추어탕과 사뭇 달라서 의아해했던 적이 있었다.
미꾸라지를 갈아서 조리했기 때문에 추어탕에 미꾸라지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
그 계기로 알게 된 것은 지방색에 따라 추어탕의 종류도 다르다는 점이다.
필자가 어린 시절 먹었던 것은 경기도식이었고, 나중에 접한 것은 전라도 남원식 추어탕이었다.
경기도식 추어탕
- 미꾸라지를 통으로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 사골 국물을 이용하기도 한다.
- 고추장을 풀어 얼큰하게 끓인다.
- 빨간 국물에 버섯, 대파를 넣어 마치 육개장처럼 보인다.
- 유부와 두부, 그리고 마지막에 계란을 풀어 넣는다.
남원식 추어탕
- 미꾸라지를 갈아서 넣는 것이 특징이다.
- 우거지가 돋보인다.
- 된장과 들깨를 듬뿍, 들기름으로 데코레이션
- 구수하고 걸쭉한 것이 특징
- 후추 대신 산초가루를 넣어 풍미를 더한다.
- '남원 미꾸라지'라는 것이 등재될 정도로 남원 춘향골에 가면 유명한 추어탕집이 많이 있음
- 현재 추어탕 형태는 거의 남원식 추어탕이 주류인 듯
경상도식 추어탕
- 삶은 알배기 배추, 고사리 등 각종 나물을 넣는다.
- 주로 된장과 간장으로 간을 한다
- 미꾸라지는 갈아서 투입
- 마늘과 제핏가루, 후추와 소금, 맛술로 마무리.
- 남원식보다는 덜 걸쭉하고, 경기도식보다는 담백한 느낌
♣ 추어탕의 추억..
필자가 어린 시절 먹었던 추억의 추어탕은 경기도식이었다.
가을 녘이 되면 동네 사람들이 함께 삼태기 (미꾸라지 포획용), 가마솥, 볕단, 마른 가지 장작 (취사 용도) 등을 챙겨 샛강 백사장에서 추어탕을 끓였다.
샛강 옆이 모두 논이었는데 논둑 언저리 보두랑을 삼태기로 훑으면 신기하게도 미꾸라지를 비롯해 여러 잡고기들이 잘도 잡혔다. 메기도 종종 잡히곤 했다. 그만큼 오염되지 않은 환경이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넓고 시원한 샛강 백사장에서 볕단과 장작으로 불을 피우고 가마솥에서 끓여 먹는 추어탕의 맛은 정말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그 맛과 그때의 그 풍경과 글로는 표현하기 힘든 불 피우는 향기 등..
그런데 이제는 중국산 미꾸라지도 많이 유입되었고, 토종 생태 환경도 예전과 같지 않아 안타깝기만 하다.
그저 투박한 과거 일상의 기억이지만, 그래서 더욱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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